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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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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돈이 돈이 아니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오래 전 '이날']
작성자 남종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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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0년 2월14일 돈이 돈이 아니게 되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돈이 ‘돈이 아닌’ 곳이 있었습니다. 1만원짜리를 100장 묶은 100만원 뭉치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곳. 한국은행 산하의 용해공장 이야기입니다.

너무 험하게 다루어져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 돈들이 사라져가던 현장. 그리고 생각보다 짧은 돈의 수명에 대한 이야기. 30년 전 경향신문에서 만나보시겠습니다.

못쓰게 된 지폐를 폐기처분하기 위해 천공기로 구멍을 뚫은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린 꼬마의 콧물이 묻었건, 포장마차 꼼장어 안주 국물이 튀었건, 투전판에서 마구 굴려졌건,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꼬깃꼬깃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건, 종이 대신 돈에 낙서를 했건….

알게 모르게 더러워지고 못 쓰게 된 헌돈들은 은행에 돌아가면 다시 시중에 나오지 못하고 한국은행으로 모아집니다.

한은에 모인 지폐는 먼저 발권부 정사과의 검사를 거쳤습니다. 아직 쓸만한 지폐들은 다시 시중은행으로 보내지지만, 나머지는 이곳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00장씩 묶여 차례로 천공기로 들어갔습니다. 천공기를 지나는 시간은 딱 3초. 하나 둘 셋 하면 화폐 양쪽에 직경 2.1㎝ 크기의 구멍이 뚫렸습니다.

기사는 “하얀 마스크를 쓰고 헌돈 다발을 천공기 속에 넣는 직원의 표정에서 아깝다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고요?

당시 한은 본점 감사과에서 구멍이 뚫려 못쓰게 되는 헌돈이 하루 평균 42억원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대구와 대전지점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110억원의 지폐가 종이 쓰레기로 변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구멍이 뚫린 지폐는 경찰의 호위를 받아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용해공장으로 보내졌습니다.

보안 상의 문제로 일반인들에게는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이 지폐 용해작업은 까다롭고 신중하게 이뤄졌는데요.

먼저 감사관이 임의로 돈다발 10여개를 끄집어내서 100장씩 정확히 묶어졌는지를 확인합니다. 확인이 끝나면 감사관은 한은 총재의 지령문에 따라 작업을 명령하고 작업인부들은 나무삽으로 지폐다발을 용광로에 퍼넣고, 24시간 동안 이곳을 봉인했습니다.

24시간 뒤에 관계직원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봉인을 뜯으면 양잿물에 탈색되고 화학약품과 열로 풀처럼 녹아버린 용해물이 남았는데요. 더 과거에는 이 용해물이 하드보드 상자 등의 펄프 원료로 쓰이기도 했지만, 89년 폐지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쓸모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1990년 2월14일 경향신문 12면

89년 한 해 이렇게 사라져간 헌돈은 9억2400만장으로 5t 트럭 150대분에 달했습니다. 액수로는 3조6118억원 규모였는데요. 액수 기준으로 1만원권이 80%를 차지했고, 5000원권이 5%,1000원권이 8%, 그리고 주화가 7%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이 저세상으로 간 만큼 새 돈을 찍어내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89년에는 5조3991억원의 돈을 새로 찍느라 529억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3조6118억원 만큼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353억원 정도를 아낄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특히 국내 지폐는 지질이 꽤 좋은 편임에도 외국 지폐에 비해 수명이 짧아 화폐를 다루는 습관의 중요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100% 면을 사용해 만든 우리 지폐는 돈이 찢어질 때까지 몇 번을 접었다 펼 수 있는지를 측정한 내절도가 5000회 이상이었고 또 돈을 일정 크기(15㎜×180㎜)로 잘라 양쪽에서 잡아당길 때 끊어지는 정도를 나타낸 인장강도가 12㎏였는데요. 95% 면을 사용해 내절도가 2000회, 인장강도가 8.2㎏에 불과한 일본 엔화지폐에 비해 훨씬 튼튼한 상황하고 100% 면을 사용한 미국·유럽의 지폐와는 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89년 당시 화폐의 수명은 1만원권 2년1개월, 5000원권 1년 등 평균 1년 9개월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87년까지 평균 8개월~1년 6개월 수준이었다가 다소 길어진 편이었다고 합니다.

기사는 “많은 사람들이 지폐를 지갑보다는 주머니에 구겨넣고 다니는 등 함부로 다루기 때문”이며 “일상에서 현찰 사용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자료: 한국은행

그렇다면 요즘은 폐기 화폐의 양이 좀 줄었을까요?

지난 2019년 한국은행이 폐기한 손상화폐는 5만원권이 발행된 2009년 이후 최대 수준인 6억4000만장으로 5t 트럭 114대 분량이었습니다. 금액으로는 4조 3540억원 규모였는데요. 권종별로는 1만원권이 3억3000만장으로 폐기은행권의 53.5%를 차지했고, 1000원권이 2억3000만장(37.8%), 5000원권이 4000만장(6.7%), 5만원권이 1000만장(2.0%) 순이었습니다. 직전 해의 6억3000만장(4조 2,613억원)에 비해 1000장 안팎(2.2%)이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30년 전과 비교해 보면, 폐기된 장수가 70% 아래로 줄었습니다. 다만, 금액은 20% 늘었는데요, 아마도 5만원권이 생겼기 때문이겠죠.

화폐의 수명도 꽤 길어졌습니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수치를 보면, 2019년 기준 5만원권 13년 6개월, 1만원권이 10년 7개월, 5000원권이 4년 1개월, 1000원권이 4년 5개월 정도입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서도 각각 1~6개월 정도씩 증가한 것이었는데요. 5만원권의 수명이 가장 긴 이유는 소액권에 비해 고액권이 보관용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한국은행 측은 신용카드와 간편결제가 활성화되면서 현금 이용이 줄었고, 화폐이용습관도 다소 개선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30년간 또다른 변화도 있었는데요.

과거엔 사람이 직접 지폐를 검사하고 천공기에 넣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동정사기가 지폐의 색상과 마모도 등 상태에 따라 폐기처분할 지폐를 자동으로 골라냅니다.

폐기용으로 분류된 돈이 천공기에 들어가는 과정도 사라졌고, 폐기지폐를 화학물질과 열로 녹이던 용해방식도 사라졌습니다. 자동정사기를 거친 폐기지폐는 가루처럼 부숴진 뒤 압축기를 거쳐 부피를 줄인 상태로 재활용업체로 넘겨집니다. 당시엔 대구 공장에서 사용하던 분쇄방식이 용해방식을 밀어낸 건 환경오염에 대한 지적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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